● 강의 목적
☞ 제대로 확실하게 깨달아라!
+ 세례 요한은 누구인가?
4000년 동안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소망으로 기다렸으면서도, 메시아보다 먼저 기다린 자가 있었으니 바로 “엘리야”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말라기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기다려 온 엘리야가 바로 세례요한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1:13~14>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태복음 17:10~13>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그런데, 예언된 엘리야라고 말한 세례 요한이 도리어 옥에 갇혀서 죽고 말았다.<마 14:1~12> 예수님을 증거하며 함께 했더라면 그리되지는 않았을텐데, 어떻게 하다가 운명이 그리되었는지 알아보자.
○ 때가 되어 진행되는 역사
+ 엘리야를 기다린 이유
<이사야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유대인들이 메시아보다 더 엘리야를 기다렸던 이유는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와서 악을 심판하여 멸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등 주의 앞길을 예비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 세례요한의 등장
<마태복음 3:1~3>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1:2~8>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 . .
먼저 세례요한이 나타나서 회개의 복음을 외쳤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간 유대 땅에 선지가가 없었다가, 때가 되어 수많은 군중들을 회개하게 하는 역사를 일으켰다.
+ 예수님의 등장
<누가복음 4장> . . .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 . .
이어, 예수님이 유대 땅에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나타나셨다.
○ 유대인의 눈에 비친 세례요한과 예수님
+ 세례 요한
<누가복음 3: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흔히 말하는 간판이 좋고, 배경도 좋은 각광받는 자였다. 존경받는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이자 어머니는 엘리사벳이었고, 태어날 때부터 신기한 기사와 이적이 있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또한 구약 율법에 뛰어난 자이며, 신앙적으로도 광야에서 독실한 수도 생활을 마친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유대인들이 메시아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대단한 자였다.
+ 예수님
하지만, 예수님은 내세울 만한 간판이 없었다. 시골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이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무명의 시골 청년이었다. 세리, 어부, 창녀 같은 사람과 어울렸으며,<막 2:16> 안식일을 범하기도 하고,<마 12:1~7>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등<요 14:9> 믿기가 힘든 사람이었다.
지금 시대로 비유해서 말하자면, 세례요한은 전통적인 종교지도자 가문 출신이며, 외국에서 유명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사회적으로도 유명한 목사로 인정받는 자였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신학은 커녕 집안 출신이나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인데 혼자 산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나타난 자라는 것이다.
이에, 메시아를 기다려 온 유대인들은 두 사람 중, 누가 메시아인지 확인하게 된다.
○ 세례 요한의 실수
+ 오리라 한 엘리야가 누구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경에 이르기를 메시아가 오기 전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고 했는데 도대체 오리라 한 엘리야는 어디 있는지 따져 물었다. 이에 제자들은 성경을 잘 모르니 대답을 못했고 제자들은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 오리라 한 엘리야는 세례요한이다. <마 17:10~13>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님은 성서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아시기에 세례 요한이 오리라 한 엘리야임을 말씀해 주셨다.
+ 그러나, 세례 요한은 본인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요한복음 1:19~26> . . .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 . .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인가 하고 생각하던 유대인들은 결국 찾아와서 물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자기가 엘리야라고 대답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되는데, 아니라고 답해버렸다. 그러니 세례요한을 엘리야라고 했던 예수님은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겠냐. 스스로 메시아로 자처한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예수님은 자칭 메시아로서 취급되며 더욱 핍박을 받게 되었다.
○ 세례 요한은 왜 자기 사명을 정확하게 몰랐을까?
+ 잘못된 강림관을 갖고 있었다.
<누가복음 1: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과거에 한번 죽은 사람이 다시 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람이 그 사명을 가지고 온다. 즉, 세례요한에게 엘리야가 영으로 와서 심정과 능력으로 강림했던 것이다. 정확한 강림관을 가지고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말 4:5>과 <사 40:3>의 구약예언이 자신을 두고 예언한 말씀임을 지혜로 깨닫고 연결을 시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유대인들이 자기에게 누구냐고 물었을 때 ‘선지자’라고만 대답했더라도 감히 못 건드렸을텐데, 엘리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라면 무슨 권한으로 세례를 주느냐며 오히려 책망받고 말았다.
+ 잘못된 신앙관으로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다.
<요한복음 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세례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맞이하고 모시고 섬기며 따라야 할 증거자였으나 구경꾼 신앙관을 가짐으로 예수님을 맞고 따르지 못했다.
+ 예수님의 외모만 보고 실족했다.
<마태복음 11:6~7>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시는 예수님을 육적으로만 보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니, 육적으로 보기에 예수님이 자기보다 나을 게 없다고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처음에는 미약하지만 차차 창대하게 펼쳐나갈 것임을 몰랐다.
○ 정말 세례요한은 자신과 예수님에 대해서 몰랐을까?
+ 태어날 때 계시를 받았다. <눅 1장>
천사가 대제사장인 사가랴에게 분명히 계시를 해 주었다.
+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분명히 알았었다. <요 1장>
본인은 메시아의 전초자로서 메시아의 길을 평탄케 하는 자이며, 메시아는 자기 뒤에 올 자라고 외쳐 증거했다. 세례요한은 자기가 예수님에게 세례를 줄 때,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분명히 알았다.
+ 알고 난 뒤에도 따르며 증거하지 않았다.<요 3장> 왜?
신부는 당연히 신랑을 맞아야 하는데, 자신은 구경꾼의 입장에서 기뻐한다고 하며 겸손한 것처럼 말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하며 세례요한도 잘 되고 예수님도 잘 되어야 했다. 하지만, 자기 눈에 만족하지 못한 예수님의 모습에 실족하고 말았다. 그리고, 성경에 아이 밴 자나 젖 먹이는 자가 화가 있다고 했는데,<마 24:19> 그 상황이 되고 말았다.
○ 어이없이 갑자기 죽임 당한 세례 요한
+ 옥에 갇히고 나서 다시 물어보는 세례 요한<마 11:2~13>
본래의 사명인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고, 왕의 간통사건을 건드려 결국 옥에 갇힌 세례요한은 정말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제자를 통해 물어본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세례요한에게 이사야 61장에서 메시아가 오시면 하는 일에 대한 예언 내용을 말씀하시며 간접적으로 사명을 깨달으라고 하셨다.<눅 7:18~30> 이미 실족한 세례요한을 두고 예수님은 돌려서 심정 속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 죽임 당한 세례 요한 : 순교냐? 심판이냐?
본래 자신의 사명인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을 하지 않고 개별 행동을 하다가 순교가 아닌 심판을 당한 것이다. 원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을 제대로 했더라면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마 14:1~12> <막 6:14~29>
+ 오히려 예수님을 부인한 세례 요한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몰랐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함으로써 예수님을 자칭 메시아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그럼으로 자기 자신은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육체로 마친 불행한 선지자가 되고 말았다. 자기가 제일 먼저 실족함으로 인하여 증거의 사명을 못했기 때문이다.<갈 3:3>
+ 세례 요한은 심판을 받고 말았다.
수많은 선지자들 중에서 메시아를 직접 모시고 증거 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으니 가장 큰 자가 될 수 있었으나, 메시아를 증거하는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한 것이다.<마 11:11>
○ [결론] 먼저, 제대로 확실하게 깨달아라!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확실하게 깨닫고 함께하며 사랑했더라면 흔들리지 않았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절대 사랑하지 않았기에 실족하고, 멀어지고, 피하게 되고, 미워하기도 한다. 제대로 모르니 급기야 예정에도 없었던 죽임까지 당하고 말았다.
○ 주를 증거하라
한 개인, 한 가정의 실수로 유대인 전체가 불신하게 되었고 온 세계 복음의 역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게 되었다. 증거자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무지하여 불신했지만, 돌아가신 이후 주님임을 깨닫고 죽을 때까지 수많은 환난과 핍박에 굴하지 않고 복음의 증인이 되어 증거자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