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 목적
☞ 삼위는 일체이시며, 각위로 존재하신다.
사람을 대할 때, 기본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꼭 알고 대해야 한다. 장단점을 알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게 된다면 대화도 잘 될 것이며 손해 보지 않고 유익을 볼 수 있다.
그처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신앙을 해야 한다. 삼위(성부/성자/성령)에 대해 알아보자.
+ 기독교의 이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한 분이시지만, 성부/성자/성령 삼위의 인격으로 존재하며, 동일한 신격으로서 권능과 영광이 동일하다고 가르친다. 요한복음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라는 말씀으로 삼위는 한 몸이라고 가르친다.
+ 삼위가 한 몸, 즉 한 분이라면 이해되지 않는 성경 구절
<마가복음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로마서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면 재림의 그 날과 그 시는 아버지만 알고 아들은 모를 수 없다.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한 몸이라면 생각만 하면 되지 왜 기도를 해야 할까? 하나님도 한 분, 주도 한 분이라고 말한 구절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구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로마서 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에 대해서 언급하신 로마서를 보면 분명히 성령님은 하나님과 따로 계신 분임을 알 수 있다. 즉, 오히려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따로 존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
+ 이치적으로 보면 ‘축소한 가정’이다
<창세기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히브리서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삼위는 각각이지만 하나와 같다’라는 말은 이치적으로 ‘축소한 가정’을 생각하면 된다. 하나님은 아버지격, 성령님은 어머니격, 성자는 아들격으로 존재하신다. 다만, 하늘나라의 체제는 이 세상 가정체제와 달라서 이치적으로 설명할 뿐이지 세상말로 ‘딱 이렇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 ‘일체’의 의미
사람은 머리, 손, 발의 구조가 각각 달라도 지체로서 하나 되어 존재한다. 부부도 남자와 여자가 각각 존재하지만 한 마음으로 가정을 이루어 존재한다. 일체라는 말은 몸이 하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심정과 뜻이 하나라는 말이다. 그처럼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존재하시지만 한 마음으로 일체되어 역사하신다.
한 사람의 지체일지라도 머리, 손, 발의 구조는 완전히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다. 오른손으로 할 것은 오른손으로 하고, 왼발로 할 것은 왼발로 하듯이 각각 할 것을 한다. 그처럼 성부, 성자, 성령은 일체되어 행하시지만, 어떤 때는 하나님 홀로, 어떤 때는 성령님 홀로, 어떤 때는 성자께서 홀로 개성으로 행하신다.
○ 성삼위의 역할
+ 하나님(성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의 신이시며, 모든 생명의 구원자이시자 사랑의 근본자이시다. 성경에 표현된 아버지<히브리서 12:9>라는 말은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창조주 입장에서 아버지라는 뜻이다. 본래 하나님은 신랑의 입장이고 우리는 신부의 입장이다.<이사야 54:5>
+ 성령님(성신)
여성신이시며 천모이시다. 사랑과 미의 여신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아름다워진다. 감동의 신으로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깨닫게 도우시며 역사하신다. 위로의 신이시자 증거의 신이시다.<엡 4:4~6> <고전 12:7~11> <갈 5:22~26> <로마서 8:26~27>
+ 성자
하나님의 독생자이자, 하나님과 동등격인 전능하신 영이시다. 세상의 구원을 책임지며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 삼위일체의 인봉이 풀리다
+ 역사의 때가 되었다
<요한복음 16: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지금 이 시대는 삼위일체의 근본의 비밀을 온전히 깨닫고 성삼위를 모시고 사랑하며 삶으로 휴거를 이루고 창조목적을 이루는 역사이다. 성경에 예언된 역사의 때가 되었기에 삼위일체의 비밀을 알려주시며 이 시대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 시대 사명자의 조건
시대 사명자가 가장 먼저 예수님의 영적 재림을 깨닫고 맞이했다. 그리고 삼위 앞에 온전히 신부의 조건을 세워 신부의 첫 열매가 되어 신부격의 성령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성약역사는 마지막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 시대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신인 성령님의 모습을 닮아야 온전한 신부의 모습으로 변화하므로 성령님의 존재가 밝혀진 것이다. 시대 사명자 외에 그 누구도 성령님의 존재를 깨달은 자는 없었다.
○ 삼위일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 가치를 알고 대하라.
전능하신 삼위일체와 통하려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한다. 세상의 왕이나 어떤 주권자와도 통하기 힘들 듯이, 전능하신 절대 신과 통하는 것이니 무작정 쉽다고 생각하지만 말고 전능자와의 대화의 가치를 알고 해야 된다. 삼위와 쉽게 통하는 방법은 먼저 시대 사명자를 알고 그를 통해 배우고 행하는 것이다. 또, 새벽 정한 시간에 약속대로 삼위일체와 대화하고 기도하며 행하면, 약속대로 주시고 역사하시고 행하도록 힘과 능력을 주시며 도우신다.
+ 먼저 불러라
사람들은 살면서 자기가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상대에게 말을 한다. 그처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특별히 할 말이 있을 때, 필요할 때 사람이나 만물을 통해 말씀하시거나 직접 말씀하신다. 전능하신 삼위일체의 말씀을 들어보려면, 자기가 먼저 자기 사연을 정말 간절하게, 합당하게, 온전하게,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전능하신 삼위일체는 옆에 계셔도 그냥은 안 통하고, 사람이 먼저 말을 해야 한다. 무엇을 볼 때도 눈으로 보려는 것을 먼저 쳐다봐야 보이듯이, 삼위일체와 대화할 때도 마음과 생각과 정신을 집중하고 삼위일체를 불러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즉시 대답하든지, 혹은 조금 후에 대답하든지 하신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말씀하시면, 첫째, 마음과 생각으로 느껴지고 깨달아지고 생각나게 하신다. 혹은, 만물을 통해 보여 주시며 “이와 같이 이러하다.” 대답하신다. 혹은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고, 혹은 설교나 잠언을 통해 해당되는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 [결론] 삼위는 일체이시며 각위이시다
+ 온전히 알고 믿어야 한다.
삼위는 마음과 심정과 뜻이 일체이시며, 각각 따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제대로 온전히 알고 믿으려면 먼저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한다. 제대로 알고 믿을 때, 안 믿고 살거나 잘 모르면서 믿고 사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영원토록 잘되고 좋게 된다.
+ 다만, 삼위 앞에는 주님의 조건(이름)으로 나아가야 한다.
삼위 앞에 나아가게 되는 조건이 있으니 바로 주님의 이름, 주님의 조건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바로 주님을 통해 삼위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 ‘성령’을 받는다! <사도행전 1:8, 2:17>
예수님의 재림을 앞두고 성령을 받아야 영이 변화되어 휴거 될 수 있다. 하나님도 성령, 성령님도 성령, 성자도 모두 거룩한 성령이다. 즉, 성령을 부어 준다는 말은 성삼위의 마음을 부어준다는 말이다.